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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06-18 18:07
불광불급에서 졸이기까지/신기정
 글쓴이 : 두루미
조회 : 1,877  

불광불급에서 졸이기까지
-1학기를 마치며 수필 안에서의 행복 찾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야) 신기정




어두운 새벽길을
안개 자욱한 가운데로 달리다보니
차안에 가득 실은 살림살이 무게만큼이나
설렘과 착잡함이 교차한다.


그러나 언제나 처럼 새로운 해는 떠오르고
세상 미물들이 더불어 기지개를 켜듯
잠시의 떨어짐이
지금껏 가까이 있었기에 미처 실감하지 못했던
서로의 소중함을, 체온을
다시금 확인하는 귀한 기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사랑한다.


2007년 1월 29일 월요일 새벽, 나는 서울에서 눈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려와 전주에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 내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지만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야만 하는 미안함을 메일로 띄웠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더 열심히 알차게 채워보리라 다짐했다. 여기저기 부임인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기억의 실타래 속에 숨겨두었던 한 곳을 인터넷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보았다.


2001년 가을이었다. 유난히 지루했던 장마의 끝자락에 머리카락으로 분신을 만들어 쓰던 손오공이 생각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고된 몸과 상관없이 마음은 불혹(不惑)으로 가는 심란한 통과의례를 치러야 했다. 회사에 입사하면서 군 제대 무렵까지의 모든 편지와 일기장을 정리한 뒤로 바쁜 일상에 양보한 듯 숨어있던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나의 넋을 앗아간 것이다.


그렇게 2년여 동안 무작정 붓 가는대로 적었다. 하지만 갈증은 더 심해질 뿐이었다. 물살 센 여울에서 한 발 한 발 내딛을수록 발 주변 모래들이 더 빨리 물결에 휩쓸리며 깊은 속으로 내몰리듯 뿌리 없는 글에 대한 허전함이 고개를 들었다. 빈속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인터넷에서 ‘수필공부’로 검색한 많은 사이트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한 곳을 점지해 두었다. 2007년 2월 초순 다시 찾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은 겨울특강이 진행 중이었고 혹여 잊을세라 책상달력에 표시해 두었다가 2월 20일 1학기에 정식으로 등록하였다.


기다리던 2007년 3월 8일, 첫 수업에 참석하려고 대전출장도 미루게 되었다. 가까이 사는 직원이 길눈 어두운 나의 첫 등굣길을 안내해 주고 O콩나물국밥집까지 알려주었다. 매주 목요일 밤마다 단골이 되었다. 103호 강의실로 가는 나의 발걸음은 새로운 인연들과의 만남에 들떠있었다. 10여분 늦게 들어서니 자기소개 시간이 진행 중이었다. 맨 끝자리에 앉아 나눠 준 책자를 뒤적이며 쭉 둘러보니 내가 나이로는 중간은 가겠지 싶었던 예상이 어긋나 보였다. 그리고 자기소개를 하는 면면들이 범상치 않아서 약간 주눅이 드는 느낌과 함께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은 안도감이 일었다.


불광불급(不狂不及)으로 시작된 3월의 가르침은 1일 3편의 수필읽기, 겨울나무와 같은 문장쓰기, 30자 1줄 반을 기본으로 하고 최대 50자 2줄 반으로 문단 구분하여 쓰기, ‘후’(後)를 ‘뒤’로 바꾸는 등 우리말 우선쓰기 등이었다. 한달의 배움만으로도 그동안 써온 글을 되짚어보니 제거해야할 군더더기가 너무 많았다. 그동안 아까워서 줄이지 못했던 만연체의 글들을 과감히 버리고 줄여보니 한결 개운했다. 마침내 3월 27일 ‘어떤 아르바이트’를 ‘첫 걸음마’라는 메일 제목으로 교수님께 보내는 용기를 냈다.


4월의 가르침은 제목 붙이기에 대한 고민, 비속어와 한자어를 줄이고 고유어 쓰기, 글다듬기와 시제의 일치 등이었다. 묘한 것은 4월에 쓴 습작들이 모두가 다음 시간의 교육내용에 반하는 것들이었다. 습작 ‘모순’의 생각 없는 제목붙이기에 대한 교수님의 지적을 시작으로 유달리 고심이 많았던 ‘화분 잘 키우기’는 ‘보살피면 약해지거늘’로 바뀌었다. 또 외래어를 쓰지 말라던 당부를 잊고 ‘Hand Made'라는 제목을 붙인 나의 만행은 교수님의 용서를 거쳐 ’손 그 위대한 명품제조기‘로 다시 태어났다.


4월은 그간 어색하던 분위기를 깨고 모두와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다. 수업 뒤에 기존 반원들만의 잔치로 알았던 ‘수필사랑 카페’에 참여하여 많은 분들의 글 사랑과 열정을 함께 할 수 있음은 행복이었다. 술은 분위기에 따라 다르다는 말처럼 매번 정량을 초과하고도 거뜬했던 아침이 신기할 뿐이다. 4월 12일 동물원 야간개장에 맞춘 밤벚꽃놀이의 싱그러움과 글로만 접하던 주간반의 진짜 청춘들을 알현한 4월 28일 남한산성과 여주 세종대왕릉 문학기행도 또 다른 자극과 배움의 시간이었다.


5월은 마음으로 글쓰기, 매력 있는 제목 붙이기와 글의 첫머리 쓰기 그리고 글다듬기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배웠다. 하지만 배운 것들이 하나둘 뒷머리에서 감시병이 되어 새로운 글쓰기가 두려움으로 다가서기도 했다. 두 분이 함께 등단하는 기쁨이 있었고, 야간반에서 시작된 글쓰기의 열풍이 주간반으로 번져 그 어느 때보다 교수님의 첨삭지도가 빛났던 시절이었다.


6월에는 ‘함축은 자르기가 아니라 졸여내는 과정’이라는 명제를 접하였다. 두껍게 썬 무를 바닥에 깔고 생선을 올린 뒤에 갖은 양념을 곁들여 약한 불에 오래도록 졸여낸 생선졸임과 같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졸인 무의 깊은 맛과 무관하게 단순히 글자 줄이기에 연연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울 뿐이다. 졸일수록 생선의 진미까지 흡수하는 무 조각의 검지만 깊은 맛을 더 음미하고 배울 일이다. 마치 석공이 이름모를 돌에서 불상을 찾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모두의 문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부채를 나누며 한 학기가 끝났다. 실수가 많았던 만큼 배운 것도 많았고 더 열심히 해야 할 당위성도 찾았다. 간혹 불상이 들어있는 돌을 손에 쥔 듯한 착각도 느껴보기도 했지만, 상상력 부재의 신변잡기에 그친 습작에는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남는다. 남은 일은 돌에 상관없이 나만의 불상을 찾아 상상력을 깨고 가슴을 후벼내면서도 온화한 미소만은 잃지 않는 글을 그려내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떤 인연이 나를 전주로 이끌었는지는 몰라도 5개월여의 생활 중에 목요일 야행을 그나마 제일 잘한 일로 꼽고 싶다. 앞으로 더 어려운 과정이 기다리겠지만 ‘수필 안에서의 행복 찾기’를 꿈꾸며 나는 기쁜 마음으로 또 다른 목요일을 기다릴 것이다.


<2007. 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