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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10-18 10:27
전주시립교향악단 186회 정기연주회
 글쓴이 : 조재한
조회 : 1,989  



휘 _ 서 현 석
지휘자 서현석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재학 시 문화공보부 신인예술상 음악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지휘를 전공하였다. 한국의 목, 금관주자로는 처음으로 독일에 유학하여 Aachen 국립음대 정기연주회의 독주자로 선발되어 연주하였고 Georgen Karloself 교수께 사사하며 Bedburg시 초청연주회, Pan Music Festival등 많은 연주회를 하였다. 귀국 후 국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수석주자로 활동하며 국향, 서울시향, KBS, 대구시향 등과 협연하였으며, 서울시향, KBS, 대구시향, 진주시향, 코리안심포니, 원로교향악단, 경북도립교향악단, 부산시향, 원주시향, 군산시향, 광주시향 등을 지휘하였다. 2000년 미국 Riverside시 초청으로 Riverside Philharmonic Orchestra를 지휘하여 “작곡가의 심오한 음악세계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특출함을 지닌 지휘자” 라는 찬사와 호평을 받았으며 2003년에는 L. A와 Riverside시-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초청연주로 현지 음악인들과 교포들의 뜨거운 사랑과 성원을 받았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4번과 제5번, 쇼스타코비치 제5번 교향곡의 CD를 출반하였고 국내 교향악단으로는 최초로 베토벤의 9개 교향곡 전곡을 CD로 제작하여 발매하는 쾌거를 이루며 한국음악계에 큰 획을 남겼다. 또한 베토벤 교향곡 시리즈에 이어 2009년부터 브람스 전곡 녹음을 시작하여 2011년 4개의 교향곡을 CD로 제작하는 큰 위업을 달성하였다. 한국음악상, 한국음악평론가협회상, 이천시 문화상, 대한민국 문화 화관훈장 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성신여자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지휘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있다.



클라리넷 _ 채 재 일
현재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클라리넷티스트 채재일은 2012년까지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주자 역임을 하였고 스페인의 클라리넷 국제콩쿠르 "Dos Hermanas" (도스 에르마나스)에서 1위에 입상, 스위스의 Concours de Geneve(제네바 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였다.뉴욕의 줄리어드 음악대학, 대학원을 장학생으로 졸업, 리카르도 모랄레스와 박종혁, 채일희를 사사한 그는 이화 경향콩쿠르, 동아음악콩쿠르 1위로 입상하는 등 국내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실내악 활동도 활발히 하여 미국 최고명성의 말보로 실내악 페스티발, 금호 쳄버소사이어티 멤버 및 서울 스프링 페스트발, 대관령국제음악제, 화음 쳄버와 연주하였고, KBS 클래식 오디세이와 예당 아트TV, 등에 출연, 2007 교향악축제와 예술의전당 11시, 예술의전당 토요 음악회를 비롯하여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등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는 물론, 러시아, 스페인, 미국에서도 여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매년 수회의 독주 무대를 갖는 그는 국내, 중국, 일본, 대만, 미국 등에서 수회의 독주무대를 갖는다.2011년 미국 5대 오케스트라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객원수석으로 연주한 그는 스위스 UBS 베르비어(Verbier)페스티발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주자로 17개국 순회연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객원단원, 밀워키 심포니 단원역임, 나아가 싱가포르 심포니와 말레이시아 필하모닉과 객원수석으로 연주하였다. 2007년에는 제임스 콘론(Conlon)과 플라시도 도밍고(Domingo)가 예술 감독으로 있는 LA오페라의 수석 클라리넷 주자로 뽑혀 종신계약을 받았다.2005년 위스콘신 주립대학에서 클라리넷 강사(Faculty)역임, 프랑스 셀머(Selmer), 일본 노나카 아티스트를 역임했으며, 현재 세계적인 리드제작사 리코(D'Addario - Rico), 프랑스 부페크람퐁(Buffet Crampon)클라리넷, 바쿤(Backun Canada)의 아티스트, 금호 쳄버소사어어티 단원,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program

L. v. Beethoven / Overture to "Egmont" Op. 84
베토벤 / 서곡 “에그몬트” 작품. 84




C. M. v. Weber / Clarinet Concerto No. 1 in f minor, Op. 73
베버 / 클라리넷 협주곡 1번 바단조 작품. 73
Ⅰ. Allegro
Ⅱ. Adagio ma non troppo
Ⅲ. Allegretto




INTERMISSION



A. Dvorak / Symphony No. 9 in e minor "From the New World" Op. 95
드보르작 / 교향곡 9번 마단조 작품. 95 “신세계로 부터”
Ⅰ. Adagio
Ⅱ. Largo
Ⅲ. Molto vivace
Ⅳ. Allegro con fuoco




Program note
L. v. Beethoven / Overture to "Egmont" Op. 84
베토벤 / 서곡 “에그몬트” 작품. 84
에그몬트 서곡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동명 비극을 주제로 하고 있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1809년에 작곡한 작품이다. 에스파냐 폭군의 압제 하에 있는 네덜란드를 구하려는 에그몬트 백작은 결국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으며 그의 애인 클레르헨은 그를 구하려다 실패하여 자살한다. 그러나 그녀의 환영은 자유의 여신이 되어 옥중의 에그몬트를 격려한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는 이 곡은 에그몬트 백작의 기백을 상징하는 듯 장대하며, 두 개의 주제가 환상으로 이루어지고 이것이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애국의 열화로서 불타는 것처럼 연주된다. 청력 상실로 인하여 세상과 격리되어 지내던 베토벤은 음악 외에 독서가로서 철학자로서 그의 음악에 심오함을 담게 되었는데, 문학이나 철학에 심취하여 호머의 '오딧세이', '일리아드'를 비롯하여 인도 철학에도 몰두했는가 하면 프리드리히 폰 쉴러, 괴테, 윌리엄 셰익스피어 등의 대문호의 문학에도 심취하였다. 특히 이들 대문호의 작품들은 베토벤의 음악 작품 곳곳에 상당한 영감을 제공했는데, 쉴러의 '환희의 송가'는 9번 교향곡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며, 극작가 코린의 비극인 '코리올란'은 서곡 코리올란에 담고 있다. (연주시간 : 약 9분)



C. M. v. Weber / Clarinet Concerto No. 1 in f minor, Op. 73
베버 / 클라리넷 협주곡 1번 바단조 작품. 73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보헤미아 출신의 뛰어난 클라리넷 연주자 하인리히 베르만을 위해 만들어졌다. 베버는 1811년 여행 중 뮌헨 궁정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던 베르만을 만났으며, 곧바로 걸작 클라리넷 작품이 이어졌다. 고전주의 형식의 구성 속에서 낭만적인 색채를 지닌 이 곡은 화려한 독주 클라리넷의 움직임이 돋보인다. 베버는 클라리넷이라는 목관악기에 대하여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작곡가였다. 고전주의 형식의 구성 속에서 낭만적인 색채를 지녔다고 평가되고 있는 이 클라리넷 협주곡 은 처음부터 끝까지 화려한 독주 클라리넷의 움직임이 끊임없이 돋보이는 그야말로 클라리넷 음악에서 명곡 중의 명곡이다. (연주시간 : 약 25분)




A. Dvorak / Symphony No. 9 in e minor "From the New World" Op. 95
드보르작 / 교향곡 9번 마단조 작품. 95 “신세계로 부터”
1891년은 드보르작의 생애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해였다. 그는 이 해에 프라하 음악원의 작곡과 교수에 임명되었으며, 그 뒤 얼마 되지도 않아 미국에서 음악원 원장 자리를 제의받았던 것이다. 작곡과 교수 월급의 세 배가 넘는 거액의 급료는 물론이고 4개월에 걸친 휴가와 연주회를 한 해에 10회 지휘할 수 있다는 조건까지 덧붙여서. 음악가라면 누구라도 뿌리치기 힘들 이런 조건을 내세워 드보르작을 유혹한 사람은 자넷 서버(Jeanette Thurber)라는 여성이었다. 열렬한 음악 애호가이자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그녀는 부유한 사업가와 결혼한 뒤, 당시만 해도 척박하기 그지없었던 미국의 음악계를 개혁할 젊은 음악가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뉴욕에 음악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그 원장 자리를 맡을 적임자로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까지 명성이 퍼져 있었던 드보르작를 낙점했던 것이다. 사실 드보르작이 이 자리를 덥석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조국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는 프라하 음악원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웠던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후한 조건 덕에 생활도 풍족해지고 창작 및 연주 활동의 자유도 보장된다는 판단에 결국 제의를 수락하게 되었다. 이 수락에는 미국의 기차와 방대한 철도 시스템을 눈으로 직접 보고자 했던 욕심도 큰 역할을 했으리라고 덧붙이는 사람도 있다.(드보르작은 자타가 공인하는 철도 마니아이기도 했다). 드보르작이 가족과 함께 뉴욕을 향해 출발한 것은 1892년 9월 15일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열렬한 환영 속에 뉴욕에 도착한 9월 27일부터, 이른바 그의 ‘미국 시기’가 펼쳐진다. 원래 2년 예정이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1895년 4월까지 연장된 이 시기는, [현악 사중주 F장조 ‘아메리카’]와 [현악 오중주 E플랫장조], [첼로 협주곡](체코 귀국 후에 완성되었다) 등의 대작이 나온 풍요로운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신세계 교향곡]은 이 시기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1893년 1월 10일에 착수되어 5월에 24일에 완성된 이 교향곡은, 같은 해 12월 15일에 카네기 홀에서 공연되었다. 초연은 작곡가의 생애 최고라 할 수 있을 만큼 대성공이었으며, 이듬해에 유럽에서 악보가 출판될 때는 드보르작과 절친한 사이였던 브람스가 교정을 도와주기도 했다. 드보르작은 “미국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교향곡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인디언이나 흑인 음악을 차용했다는 것은 무의미한 소문일 뿐이며, 나는 다만 미국의 민요 정신을 넣어 작곡했을 뿐”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사실 선율이나 음계에서 인디언 음악이나 흑인 영가의 영향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드보르작이 ‘신세계로부터’라는 제목을 붙일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오히려 미국의 광활한 자연과 대도시의 활기에 대한 주관적인 인상이었다.(특히 1악장과 4악장에 이런 인상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연주시간 : 약 45분)